가끔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왜 자꾸 방향이 달라지냐고.
사실 방향은 바뀌어도 된다. 나는 주장이 매우 강한 편이지만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의 생각을 바꿀 것인지를 고민한다.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음에도 자존심 때문에 기존의 의사결정을 고집하는 것만큼 회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핸들을 틀었다면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투명하게 동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래야 그 사람들도 일을 할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내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데 팀원들이 내가 결정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팀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고 상황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답을 해준다.
비브로스에 처음 합류했을 때의 일이다. 회사는 매월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통장에는 돈이 얼마 없었고 런웨이는 매우 짧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비용부터 줄인다. 매출을 올리거나 투자를 받는데 도움이 되는 비용은 그대로 두더라도, 이와 상관없어 보이는 항목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비용이라 하더라도 철저하게 줄인다. 그런데 이 방식은 생각보단 효율적이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똑닥을 도입하는 병원이 많이 늘어야 그 병원을 다니는 환자들이 똑닥을 사용할 거라는 가정 하에, 비브로스는 한 해에도 굉장히 큰 비용을 프로모션 비용으로 쓰고 있었다. 외부 회사를 통해 병원들이 똑닥을 도입하도록 설득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했던 것이다. 스타트업 치고 많은 돈이 아니라, 전직장이었던 카카오에서도 굉장히 부담이 될 만큼 매우 큰 금액이었다.
반면, 작은 비용들은 철저히 아끼고 있었다. 구글 워크스페이스도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급하고 있었고, 컨플루언스도 일부 직군만 사용하고, 메신저도 비용이 저렴한 것을 쓰고, 평가결과는 엑셀로, HR솔루션은 전자결재와 여러 기능이 포함된 아주 오래된(하지만 저렴한) 툴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1. 병원을 확장시키는 프로모션은 종료한다.
2. 업무툴은 비용이 들더라도 효율적인 것으로 교체한다.
매출에 도움이 되거나 유저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비용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스타트업이 많다. 사업을 성장시키고 투자를 받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도가 좋다고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돈은 유한하다. 목적과 관계없이 어디에 돈을 쓰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같은 돈을 써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당연히 거기에 돈을 써야 한다.
나는 업무 효율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어떻게든 비용을 아끼며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것보다는 비용을 쓰고 그 시간에 나와 같이 일하는 다수의 팀원들이 훨씬 더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떻게든 허리를 졸라매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모든 직원들에게 구글 워크스페이스 계정을 주었고, 개인 계정을 회사업무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시켰다. 메신저는 슬랙으로 교체했고, 위키는 컨플루언스로, BI툴은 메타베이스를 데이터를 보고 싶어하는 모든 직원으로 확대해서 주었다. HR은 플렉스(flex)로 변경했고, 평가는 레몬베이스, 채용은 그리팅을 도입했다. 가뜩이나 런웨이가 짧은데 비용을 펑펑 쓴 것 같지만 1번 비용(병원 프로모션)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업무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내가 비브로스에 합류하기 전부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툴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CRM 툴인 브레이즈(braze)였다.
브레이즈는 당연히 좋다. 차로 치면 프르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주행성도 좋고, 안정성도 좋고, 뽀대도 난다. 문제는 세 가지였다.
a. 매우 비싸다.
b. 브레이즈를 제대로 쓰려면 다른 툴도 사야 한다.
c. 그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만약 비용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스타트업에서 App tracking, Segment, CRM을 개선하고 싶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앱스플라이어/앰플리튜드/브레이즈를 추천한다.
단, 이렇게 조합하면 매우 비싸다. 똑닥 기준으로는 한 해에 최소한 2억원 이상의 비용을 내야 했다. 아무리 업무툴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나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비용은 당연히 고민한다. 만약 그 비용을 써서 바로 매출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똑닥은 사실상 매출이 0원이었다. 아직 유료멤버십 도입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을 때였다.
앱스플라이어, 앰플리튜드 없이 '브레이즈부터 검토'한다는 개념도 이상했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했다. 앱스플라이어를 써서 정확히 앱유저의 행동을 트랙킹하고, 앰플리튜드를 써서 고객을 분류한 후, 그 다음에 브레이즈를 통해 CRM을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맨 마지막 단계에 있는 CRM 툴만 먼저 도입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다가 브레이즈를 제대로 다룰 줄 알거나, 혼자서 배워서라도 그러한 툴을 공부하고 운영할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이 당시의 비브로스 내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유형의 툴을 산다는 것은 다시 외부 회사에 돈을 주고 운영을 맡기거나, 툴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론은?
구매 직전의 브레이즈는 바로 drop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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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후, 그로스(gross marketing)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팀원(지은님)을 회사로 어렵게 불러들였다.
유료멤버십 준비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성공 가능성은 아직 가늠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의 희망은 있었고, 그렇다면 비용을 쓰지 않고 버티는 것보다 비용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툴 도입보다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지은님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회사는 앱스플라이어, 앰플리튜드, 브레이즈 패키지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의 비브로스에는 그로스란 개념이 아예 없었고, 이제 도입한다고 해도 주로 사용할 기능은 가장 일반적인 기능이었다. 차로 치면 A라는 장소에서 B로 안전하게 갈 수 있으면 되었다. 그래서 지은님과 상의한 후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국산툴을 똑닥에 도입했다.
더 좋은 툴이 있었지만 아직 똑닥은 포르쉐를 살 돈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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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닥의 유료멤버십은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지은님은 계속 회사를 다녔고, 도입한 툴을 회사에 전파했고 다른 동료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맡아 진행했다.
지은님도 툴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었으나, 아무것도 없던 회사에 처음부터 툴을 적용하고, 그것을 조직내에 전파하고 다른 동료에게 인수인계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은님에게도 큰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처음부터 좋은 툴을 사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똑닥은 이제 툴을 교체하는 것을 검토하는 듯 하다. 유료멤버십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지금, 기존에 사용하던 툴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굳이 그것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특히, 지금의 똑닥은 유료구독이라는 확실한 BM이 생겼기 때문에, 더 좋은 툴을 사용하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했을 때 툴에 투자한 금액의 X배를 얻어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굳이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툴을 제대로 썼을 때 확실히 성과를 얻어낼 자신이 있다면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말 그대로 '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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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정리해보자.
처음에는 도입 직전의 브레이즈를 drop했다. 그 다음에는 국산 툴을 도입했다. 유료멤버십이 성공한 지금에 와서는 국산 툴을 버리고 다시 브레이즈를 구매하는 것을 검토한다.
어차피 도입할 거였다면 왜 브레이즈를 처음부터 쓰지 않았을까. 왜 두 번 작업을 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바보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가장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한다'는 기본 로직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비용을 아끼자고 구닥다리 업무툴을 어떻게든 사용하는 것도, 효율성을 높이자고 자신이 부담할 수 없는 업무툴을 도입하는 것도 미련한 결정이다. 모든 결정에는 판단이 필요하다.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것이 가장 성과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쓸데없이 오랫동안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툴을 도입했을 때와 도입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계속 검토시켜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결정은 해야 한다. 상황에 맞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