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공정하고 효율적인 평가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노력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런 것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을까?
첫 직장인 LG전자부터 IT기업인 네이버, 페이스북, 카카오, 그리고 스타트업인 비브로스를 다니며 평가제도를 관찰하고 고민했다.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좋은 평가제도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1. 평가란 무엇인가.
평가는 '각 구성원에 대한 회사의 공식적인 피드백'이다.
주기적인 1:1을 통해서도 잘 하고 있는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나 최소한 1년에 한 번 정도는 공식적으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 격려나 응원이 아닌, 그 사람의 성과와 가치, 잠재력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모든 평가에는 캘리브레이션이라는 과정이 포함된다. 자신의 팀원 뿐 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의 팀원에 대해서도 서로간에 의견을 나눈다. 누가 더 좋은 성과를 냈는지, 회사에 더 필요한 존재인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조직의 매니저가 치열하게 논의한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누구와 같이 일하고 싶은가'에 대한 회사 차원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평가제도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상시 평가'란 미명 하에 이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스타트업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때마다 평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회사는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가 전부다.
회사가 구성원에게, 구성원이 스스로에게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 평가라고 할 수 있다.
2. 평가와 보상의 관계
평가 따로, 보상 따로 하는 회사가 많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인데 들어보면 구태여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내용들이다.
한 가지만 기억하자. 평가가 보상과 연계되지 않는 한, 그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회사가 구성원에게 쓸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 평가는 그 재원을 누구에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의 기준'을 마련한다. 좋은 평가를 받든 그렇지 않든 간에 별 차이가 없다면 구성원들은 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물론 보상에는 금전적인 것만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가장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훨씬 적은 보상으로도 대체불가능한 사람들을 붙잡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구성원들에 있어 보상은 회사와 같이할 지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고, 평가는 그 재원의 분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3.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가결과'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평가는 아래와 같다.
-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만든다.
- 목표에 대해 구성원과 회사가 합의를 한다.
- 성과를 측정한다.
- 기준에 맞게 평가를 내린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방식의 문제는 무엇일까? 위 모든 단계가 현실세계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만든다는 첫 번째 단초부터 문제가 많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는데, 그러한 것을 만들었다는 회사를 본 적이 없다. 아, 물론 경영진과 HR부서는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다녔던 회사 중에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느꼈던 페이스북도 평가체계 만큼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것은 게임의 Rule을 잘 활용했을 뿐이고 그 방식이 합리적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공정한 평가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회사가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마음은 전해졌지만, 사실상 그것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평가제도를 불신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평가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평가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은 유명무실해진다.
누가 좋은 평가를 받는가?
이것이 평가의 핵심이다.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납득을 하는지'가 평가제도 자체의 완성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회사의 경우 평가결과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Open'을 그렇게나 강조하던 페이스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경로로 누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때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아, 숨길만 했구나.
4. 평가의 시작은 '성과/기대치'다.
많은 회사에서 '매니저, 혹은 리더'를 다양하게 정의한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팀원의 연봉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매니저(혹은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큰 보상을 받는 사람은 더 큰 성과를 내야 한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회사는 아수라장이 된다.
굉장히 많은 회사에서 보상과 실력이 랜덤분포를 띤다. 처음으로 큰 규모의 조직을 맡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구성원들의 보상(연봉, 인센티브, 스톡옵션 등)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니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미친.
단순히 회사경력이 많다고, 전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았다고, 회사에 들어올 때 연봉협상을 잘 했다고 높은 보상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반대로 실력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보상을 받고 있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나의 평가기준은 명확했다.
자신이 받고 있는 보상에 비례한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가(혹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가).
현재 받고 있는 연봉에 관계 없이 실력에 기반해서 역할을 주었고, 평가를 할 때는 기대치(보상)와 성과를 연관지어서 판단했다.
결과는?
큰 폭으로 연봉 인상이 된 사람이 많았지만 연봉이 동결된 사람 역시 많았다. 정규분포 곡선을 뒤집은 형태의 분포를 띄었다. 인위적으로 고른 분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실력에 따라 평가했다.
5. 평가를 할 때는 과거와 미래 가운데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목표를 합의한 후 그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이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먼저 목표를 합의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특히 합의된 목표가 보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더욱 어려워진다.
상황이 계속 바뀐다는 것도 문제다. 목표를 합의했던 때와 시장현황이 완전히 달라졌을 때 아래 옵션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a. 기존에 합의했던 목표를 계속 유지 b. 새로운 목표를 다시 합의 c. 먼저 바뀐 상황에 대응한 뒤에 목표를 재협의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c를 가장 선호한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문제부터 해결한다. 사전에 무엇을 합의했든 간에 나는 일단 회사 차원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한다.
'복궐복'도 골치덩어리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성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그 사람이 잘해서 한 것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 초과달성한 경우는 그래도 낫다. 반대로 목표 대비 성과가 굉장히 낮았거나 당연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어떠한 평가를 내려야 할까.
1) 달성하지 못했으니 안 좋은 평가를 내려야 할까, 아니면 2) 운이 나빴던 것을 감안하여 보정해야 할까?
'공정'을 우선시한다면 1번을, '현실'을 고려한다면 2번을 택해야 한다. 정답은 없지만, 어느 것이든 간에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에게 평가의 기준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가에 있어 '과거보다는 미래'를 중시한다. 지난 1년간 어떤 성과를 냈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를 그 사람을 잡기 위해 필요한 보상과 연동지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좋은 성과를 내었든 내지 못했든 간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성장했다면, 그래서 다음 번에도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 경우에는 높은 평가를 내린다. 반대로 아무리 성과가 좋았어도 다시는 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평가를 낮게 준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했을 때 얻게 되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가와 보상의 상관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바라보고 평가를 하게 되면 잡고 싶은 사람을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평가를 낮게 주고 보상을 높이게 되면 '평가-보상'의 상관관계가 깨진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의 기준 자체를 과거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에 두는 것이다.
6. 주관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의 단점은 명확하다. 평가가 주관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공정'을 중요시하는 최근의 흐름을 보면 이것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평가는 공정할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평가에 있어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평가제도의 완결성'보다는 '평가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위에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평가가 공정하다는 것을 정말로 강조하고 싶다면,
나는 좋은 평가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알아서 판단을 하게 된다. '실력이 없어도 줄을 잘 타는, 정치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지, 아니면 그 결과를 보고 서로 납득할 수 있는지.
정말로 공정하다면 왜 그 결과를 공개하지 못하는가. 직장을 다니면서 이것이 항상 궁금했다.
비브로스에서는 평가 관련 꽤 많은 것들을 적용했지만, 아쉽게도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것 까지는 하지 못했다. 구성원들에게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기도 하고, 일단 회사를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그 다음 해에는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는 하지만.
7. 공정성보다는 '예측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
카카오와 비브로스에서 평가 관련 가장 강조했던 것은 '예측 가능성'이었다.
비브로스에서는 1년에 4번 평가를 진행했다. 매 분기 말에 자신이 한 일을 적고, 그에 대한 Self-Review를 하도록 했다. 최대한 짧고 분명하게.
그리고 그 평가에 대해 등급과 피드백을 기록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회사도 많이 하는 방식일 것이다. 가장 다른 것은 아래와 같았다.
각 분기에 한 일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연말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의 '예측등급'을 표기했다.
가령 1분기에는 당연히 1분기의 결과에 대해서 리뷰하겠지만, 2분기에는 2분기가 아닌 2분기까지의 결과를, 3분기에는 1~3분기까지의 결과를, 4분기에는 1년 전체의 등급을 매겼다.
평가결과는 절대로 서프라이즈가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에게 평가 관련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다. 평가가 주관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자신의 평가결과를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회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매분기 공식적으로 전달하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만약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과를 받았다면 왜 그런지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팀장과 실장, 그리고 대표에게 질의하도록 한 것이다.
1년 내내 잘한다고 칭찬하다가 연말에 뒤통수를 때리는 것 만큼 이상한 평가제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 분기에 매 분기의 결과를 리뷰해서 분기 단위로 보상을 책정하는 것도 비효율적이고, 그렇다고 각 분기의 평가 내용을 평균내서 연말에 적용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라도 자신의 가치에 대해 회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시그널'을 명확하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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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모든 회사에는 각자에 맞는 평가방식이 존재한다. 만약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그 회사의 평가방식일 것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두에게 통용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틀리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가, 보상, 채용, 교육은 서로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조직의 리더라면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주제이다. 평가는 팀빌딩을 위한 초석과도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회사는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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