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현장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지만 실제로 이를 적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카카오를 떠나 병원예약 서비스인 똑닥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인 비브로스에 처음 합류했을 때의 일이다. 병원에 똑닥을 도입하는 것을 설득하는 업무를 외부 조직에 맡겼었기 때문에 똑닥 내에는 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이야기한 후, 앞으로 누가 병원을 설득하는 업무를 맡으면 좋은지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두 명이 추려졌고, 그 둘의 매니저인 기획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몇 개 병원을 우선적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a. 똑닥을 가장 잘 사용하고 있는 병원 3개
b. 똑닥을 도입하지 않았거나 잘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병원 3개
이 두 가지 타입의 병원을 말해달라고 한 후, 번갈아 방문했다. 이렇게 병원을 찾아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잘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세일즈 업무를 담당할 때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파는 제품에 대해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일즈는 누군가를 속이는 업무가 아니다. 필요도 없는 물건을 감언이설로 파는 것은 하급 세일즈일 뿐이다. 사실 세일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사기에 더 가깝다.
'확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파는 제품을 정말로 좋아하는 고객'을 실제로 만나는 것이다.
똑닥을 잘 쓰고 있는 병원이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고, 그것을 같이 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그 병원에서 똑닥이 잘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동료들이었지만, 원장과 간호사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똑닥을 통해 그 병원의 운영이 실제로 편해졌다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똑닥을 사용하면, 제대로만 운영하면 병원 운영이 편해진다는 설득을 하곤 했지만, 수없이 많은 거절을 통해 어느 사이 작아져간 마음을 다시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도, 카카오에서도 똑같이 했다. 내가 뭔가를 팔고 싶을 때는 일단 내가 파는 제품을 가장 좋아하고 잘 활용하고 있는 광고주부터 찾는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누군가는 내가 파는 제품에 정말로 만족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세일즈는 자신이 파는 제품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확신은 거짓이 아닌,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2. 왜 중간을 생략하는가?
병원을 알고 싶다고 해서 '아무 병원'이나 가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처음부터 아주 명확하게 1) 똑닥을 잘 쓰고 있는 병원과 2) 똑닥을 잘 쓰고 있지 못한 병원으로 나누어 방문한 것, 다시 말해 '중간을 생략한 것'은 이유가 있다.
내 제품을 정말로 좋아하는 고객과 내 제품에 관심이 없거나 실망한 고객을 번갈아 살피면 어디서 그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실 때와도 같다. 모든 카페의 커피는 맛이 조금씩 다르다. 섬세한 미각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그 차이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둔한 미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장 잘하는 카페와 가장 못하는 카페의 커피를 번갈아 마시게 하면 그 때는 그 차이를 알아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알아채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씩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세일즈를 시키면 안 된다)
똑닥을 잘 쓰는 병원과 그렇지 못한 병원은 모든 것이 달랐다. 건물에 들어가 병원으로 걸어가는 복도의 느낌, 문을 열었을 때 마주치는 간호사의 표정,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는 병원의 분위기, 원장 선생님의 말과 표정, 정말로 그 모든 것들이 달랐다.
병원을 방문하고 나오면 카페에 앉아 동료들과 잠시 동안 랩업을 했다. 그 기억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간단히 랩업을 함으로써,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은 명확했다.
- 똑닥을 잘 쓰면 원장과 간호사, 그리고 환자까지 정말로 모두가 행복해진다.
- 똑닥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병원 운영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1-2번 쓰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쿠팡과는 다르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똑같은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왜 어떤 병원은 똑닥을 잘 사용하고, 어떤 병원은 똑닥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똑닥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병원은 어디에서 막혀있는 것일까. 그리고 똑닥을 잘 사용하는 병원들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한 것일까.
3. 물어보면 된다.
문제를 푸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기발한 묘수 같은 것을 생각하거나 힘들게 자기 몸을 혹사한다. 마치 그렇게 해야,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면 되는 것이다.
똑닥을 잘 쓰지 못하고 있는 병원들은 똑닥에 적대적이거나, 귀찮아하거나, 실망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괜찮다. 제품에 실망한 고객은 늘 이런 반응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어요?
그러면 불만을 쏟아낸다. 누군가의 불만을 들었는데 마땅한 답이 없을 때는 그냥 말없이 듣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서 할 일은?
그 병원을 나와 '똑닥을 잘 운영하는 병원'에 가서 방금 들은 답을 살짝 바꾸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똑닥을 처음 도입했을 때 요런 점들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괜찮으셨어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빙고.
간호사 마음은 간호사가 제일 잘 안다. 원장 마음은 원장 선생님이 가장 잘 아는 것과 같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의 좋은 점만 생각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의 모든 것이 너무나 이쁘고 소중한 나머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불편을 겪는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불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심지어 그것을 극복해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솔로몬의 지혜가 담겨 있다. 들으면 입이 딱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에 똑닥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다른 병원에 가서 똑같이 묻는다. 똑닥을 쓰면서 어떤 것이 불편했냐고.
만약 처음 듣는 질문이 나온 경우에는 또 잠자코 듣는다. 그러나 앞선 병원에서 들었던 질문, 그러니까 모법답안을 알고 있는 질문이 나왔을 경우에는,
아, 힘드셨겠네요. 맞아요. 똑닥을 처음 도입하는 병원들에는 그런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저희가 좀더 잘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저희도 병원에 가서 물어보곤 해요. 이런 고민을 하는 병원들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를요. 그 병원의 원장님이(혹은 간호사가) 어떤 말을 해 주었냐 하면요...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비슷하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진정으로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일단 마음이 풀린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그 문제를 풀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삶이 훨씬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늘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는데, 제품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그 제품을 사용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훨씬 더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가?
똑닥을 잘 쓰는 병원과 똑닥이 잘 사용되지 않는 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질문과 답변을 이어나가게 되면, 마치 그 병원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된다. 세일즈는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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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지, 방문할 병원을 어떻게 선택하면 좋은지, 가서 무엇을 하면 좋은 지에 대해서는 같이 간 동료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동료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관찰했던 것은 병원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관찰의 대상에는 같이 간 동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장님과 간호사를 대하는 태도, 서로 다른 병원의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 어떠한 점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사무실보다는, 실제 고객이 있는 현장에서 훨씬 더 잘 보인다.
그 결과는 꽤나 놀라웠다.
개인별로 부족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각자에게는 충분할 만큼의 강점이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세일즈 바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보다 훨씬 더 강점을 보이는 동료도 있었다.
아니 이러한 사람들을 지금까지 병원을 설득하는 업무에 활용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리더 밑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게 된다. 그럴 필요가 없다.
병원을 나가보면서 나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똑닥은 아직 개선이 필요한 점들이 많았지만, 그 자체로 꽤 좋은 서비스였고, 정말로 만족해하는 고객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 안에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