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변했어.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야. 이 두 가지 말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사람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1. 변한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다른가.
당연히 다르다.
첫 직장에서 이탈리아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홈씨어터를 막 출시했던 상태라서 매장 내의 샵 디스플레이도 점검하고, 경쟁사 제품의 장단점과 가격 등을 확인하는 목적이었다. 유료로 구독한 사이트로부터 국가별 모든 제품의 가격과 판매량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일주일 동안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다. 아직 신입의 티를 벗지 못한 내게는 꽤 힘든 작업이었는데, 당시에 일주일 동안 했던 업무를 지금은 두 시간 정도면 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경험을 통해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교육도, 노력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순히 예전보다 더 적은 시간 내에 할 수 있게 된 것 뿐이 아니다. 예전에는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 가령, 예전에는 10명이 있으면 합이 잘 맞는 사람은 두 세명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지간한 사람과는 무난하게 잘 협업할 수 있다.
시간을 거쳐 내 안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강해진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약해진 것도 많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2.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란 말을 많이 한다. 누군가에게 실망했을 때, 혹은 그 경험이 떠올랐을 때 많이 하는 말이다. 면접에서도 이 말을 많이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1) 말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
2) 변하긴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어느 쪽이건 간에 회사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100명 중에 1-2명 정도 예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적은 확률에 기대는 것보다는 그냥 처음부터 일을 잘 할 것 같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3. 그래서 결론은?
그래서 사람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1)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변하는 부분과, 2)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모든 노력이 헛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이상 노력하면 조금씩 변화가 체감되기도 하고, 그러다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고 잘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굉장히 집중하게 되고 비교적 단기간에도 엄청나게 발전하게 된다. 이것을 '압축성장'의 시기라고 한다.
반면, 충분히 노력하면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할 때가 많다. 실제로 노력을 통해 불가능해보일 것 같은 일을 해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기도 하다. 그 사례들을 통해서 자신이 노력을 통해서 변할 수 있는 것을 찾기 보다는 이미 하고 있는, 그러니까 매몰비용이 잔뜩 담긴 일을 계속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구마가 될 수 없다. 그런데 감자는 고구마가 될 필요도 없다.
4. 어떤 것이 변하고, 어떤 것이 변하지 않는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의 이분법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변할 수 있는가,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노력을 통해 성장시킬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그 중에서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리는지,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높여 집중할 것인지의 판단이 중요하다. 노력하면 다 개선할 수 있다고 눈에 띄는 아무 것이나 집중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에 '노력해도 변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 시간에 노력해도 안 될 것을 피하고, 집중할 것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노력을 통해 누구나,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 필요는 없다. 설령 그것을 해낸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5. 예전에 할 수 없던 것을 왜 지금은 할 수 있는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갑자기 할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의아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단계적 성장'에 가깝다.
수학을 떠올려 보면 된다. 아무리 소질이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중1때 미적분의 개념을 접하면 그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노력과는 무관하다. 미적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앞단에 선행해서 이해해야 하는 개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에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어도, 시간과 경험을 쌓으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하나 단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처음의 그 문제를 접하면 갑자기 '자신이 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간에 풀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도저히 풀 수 없다고 포기한 과제를 완전히 접어둘 필요는 없다. 어떤 것들은 지금은 아니어도, 때가 되면 풀 수 있기 때문이다.
6.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는 본성도 있다.
약간 무서운 이야기인데,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면, 그리고 어떤 '힘'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더 이상 조심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은 채로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그 사람이 정말로 그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쪽으로 자신의 본성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나쁜 쪽으로 자신의 본성을 깨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웹툰 송곳에서는 이러한 말이 나온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7. 다른 사람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자기자신을 온전히 들여다 보는 사람, 그래서 변할 부분과 변하지 않을 부분을 이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러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성장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을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때로는 그 사람보다도 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노력은 그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노력을 통해서 성공할 자질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안목은 데이터라기 보다는 '숙련된 직관'에 더 가깝다.
안목이 없으면 검증된 사람, 이미 실력을 증명한 사람만을 찾게 된다. 보통 이 사람들은 매우 비싸다. 그들을 모두 감당할 돈이 있다면 당연히 끌어들여도 된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을 키워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