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스타트업 대표들을 꽤 많이 만나고 있다. 커피챗 신청이 오는 경우도 있고, 정식으로 컨설팅 계약을 맺고 2-3달 정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돈을 받지 않고 일정 기간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마다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대표들을 만나면서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을 정리해보았다.
1. 런웨이에 따라서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런웨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속으로는 불안해하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대표들이 너무 많다. 두 경우 모두 문제가 되겠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런웨이에 따라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다.
런웨이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래도 1년 정도는 남았을 때, 18개월 이상 남았을 때, 이미 BEP를 맞추었기 때문에 런웨이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의 전략은 모두 달라야 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시를 들면, 기간이 짧을 수록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기간이 길 수록 '팀빌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런웨이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1) 영업이익과 2) 투자유치 가능성이다.
어떤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마법같은 전략은 없다. 전략은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고, 런웨이에 대한 판단은 이러한 전략을 위한 기반이 된다.
2.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는 중요하다.
굉장히 많은 스타트업들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많다. 유저들을 끌어들이면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일까.
가장 많이 듣는 사례는 페이스북은, 구글은 어떻게 성장했는가와 같은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쿠팡, 배민과 같이 초반에 엄청난 적자를 감당하며 사업을 진행하였지만 결국 성공을 이룬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사례는 적다. 무엇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오랜 시간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투자사와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사는 그런 마음이 없는데 대표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으면 급작스런 위기를 맞게 된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돈은 저절로 벌리는 것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제품을 만든 다음에 판매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초반에 너무 힘을 쓰지 않고 MVP를 만들어 빠르게 시장을 탭핑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세일즈를 쉽게 생각하는 창업가가 너무 많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역량과 그 제품을 팔 수 있는 역량은 서로 다르고,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일단 회사가 성장한 다음에 나중에 고민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1)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과 2) 제품을 팔 수 있는 사람이 페어가 되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그 돈이 사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데 충분한 현금흐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3. 모든 구성원이 바라보는 숫자가 있어야 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5분이라도 확인한 뒤 하루를 시작하는 숫자가 있는가?
목표의 3원칙은 매우 간단하다.
1) 언제까지
2) 무엇을
3) 얼마나 달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숫자는 꼭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아니어도 좋다. 유저지표도 좋고, 재구매율같은 성과지표도 좋고, 활성 광고주수 같은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구성원 모두가 그냥 뭔가를 열심히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가장 중요한 숫자를 설정하고, 매일같이 확인하고, 그 숫자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자신의 업무가 그 숫자를 높이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엄청난 차이를 낳게 된다.
그 숫자가 정말로 중요한 숫자인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 숫자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떠올려보면 된다. 만약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숫자는 중요한 숫자가 아니고, 아마 달성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4. 핵심과제와 우선순위가 정리되어 있는가?
어떤 회사에 다니든지 전사 차원의 핵심과제는 최대 10개를 넘지 않도록 설정한다. 우선순위를 설정한 후, 가장 중요한 순서대로 리스트화한다.
우선순위 설정은 1) 리소스와 2) Impact 두 가지를 기준으로 한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전사가 바라보는 숫자가 있다면, 그 숫자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어떤 업무에 각자의 리소스를 써야 하는가가 정의되어 있어야 조직은 목표를 향해 Align될 수 있다.
전사 단위의 핵심과제와 우선순위는 1장으로 정리되어, 모두가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쉽게도 핵심과제와 우선순위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 스타트업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모두들 지나칠 만큼 개인과제, 팀과제에만 집중하고 전사 단위의 핵심과제와 우선순위를 빠뜨린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다.)
5. 팀빌딩은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스타트업들이 '팀'을 강조한다. 그런데 몇 가지 질문만 던져도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 사업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정의하고, - 그 핵심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한 뒤,
- 이미 있는 것은 지키고
- 부족한 것은 교육으로 강화하고
- 없는 것은 외부에서 끌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내용은 평가, 보상, 교육, 채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굉장히 많은 스타트업의 대표들이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오늘 당장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런웨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다른 모든 것들 보다 일단 회사를 살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런웨이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상황, 최소한 6개월 이상의 런웨이가 남아있는 경우라면 '팀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한다.
투자금, 사업아이템, 운과 같은 것들이 성공의 Key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 때문이다. 특히, 돈으로는 팀을 살 수 없다.
6. 스타트업도 회사다.
인간은 굉장히 독특하고 의미있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생명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음식과 물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물론 인간이 생명체라고 해서 개나 고양이와 같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다른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일까에 대한 판단이다.
스타트업은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다. 일반적인 회사들이 망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나머지 '확률은 적으나 성공했을 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필요 이상으로 기피할 때, 스타트업이 그 안에서 기회를 얻는다. 확률이 낮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스타트업은 망할 수 있지만, 그런 실패를 발판 삼아 그 중 하나의 스타트업은 성공하고, 그렇게 성공한 스타트업은 기존 회사의 아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VC와 같은 투자사도 이러한 스타트업의 속성을 이해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투자한다. 투자한 모든 스타트업이 성공할 필요는 없지만, 그 중 1-2개는 반드시 성공하여 다른 모든 실패를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투자사들이 스타트업에 '끊임없는 성장'을 강조한다. 망하지 않는 것보다는, 성공했을 때 얼마나 큰 멀티플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회사 경영의 기본적인 것들'이 스타트업 씬에서 자주 간과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을 컨설팅하며 자주 발견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 조직도가 없는 스타트업이 많다.
- 조직구조가 변경되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 평가체계가 없거나, 반대로 지나칠 만큼 많은 시간을 평가에 쏟는다.
- 각각의 구성원에게 누가 피드백을 줄 것인지가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 모든 구성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보상을 제공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단건 단건으로 판단한다.
- 핵심인력이 이탈하는데 그 이유를 찾이 못하고 채용으로 대체한다.
-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체계도 부족하다.
경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거나, '스타트업은 일반 회사와 다르다,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경영은 어느 회사에나 필요한 근간이다. 스타트업의 상황에 맞게 최적화할 부분이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기본을 이해한 셰프가 재료와 상황에 따라 응용을 하는 정도여야 하지, 스타트업만을 위한 경영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7. 구성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참으로 난감한 경우인데, 자신과 함께 하는 구성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다. 어떤 것을 잘 하는지, 어떤 것을 힘들어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왜 지금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만족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신이 나서 일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이다.
무조건 1:1을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일을 할 때, 말을 할 때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매니저의 의견을 듣고, 일을 같이 하면서 파악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단서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같이 논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구성원 각자를 '재료'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도 재료의 하나다. 각자에게는 재료 본연의 맛이 있고, 셰프는 그러한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재료는 단독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재료와 같이 어울렸을 때 서로를 보완하며 최고의 맛을 낸다. 어떤 요리를 만들 것인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따라서 재료를 잘 활용할 수도 있고, 있는 재료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어떤 요리를 만들 것인가를 설정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구성원에 대한 이해는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Key가 되는 요소이다.
어떤 사람은 백지장을 주고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정해 주었을 때 더 힘을 발휘한다. 어떤 사람은 목표만 합의하면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업무에 리더가 관심을 보이고 중간중간 점검하며 끌어주는 것을 선호한다. 위임과 관여 중에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위임을 하고 어떤 상황에서 관여할 것인지의 판단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러한 판단의 근간은 구성원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자신의 구성원을 잘 모른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같이 일하는 구성원을 잘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같이 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잘 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누구와 같이 일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정체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한 팀이 만들어지고, 일하는 방식이 구체화되고, 마침내 성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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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라고 해서 이 모든 짐을 혼자서 질 수는 없다. 우리 대표는 왜 이렇게 하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을 갖기 보다는, 좀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부터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대표와 구성원 중에 먼저 다가서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