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를 대충 정하는 회사가 많다. 그러나 KPI를 어떻게 정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가가 회사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어떤 회사를 들어가건, 혹은 컨설팅을 시작하건 간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들이 있다.
- 구성원 모두가 기억하는 KPI가 있는가.
-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달성하고 싶어하는가.
- KPI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똑닥을 서비스하는 비브로스에 처음 합류했을 때의 일이다. 다른 많은 회사들처럼 그해 달성해야 하는 KPI가 프린트되어 잘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스크린세이버로도 만들어져서 랩탑을 끄면 모니터마다 똑닥의 상징색인 노란색 화면에 어떤 지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싶은지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구성원의 거의 대부분이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숫자는 달성할 수 없다.
어떤 회사를 가든 나와 같이 하는 구성원들, 그리고 컨설팅하는 회사의 경영진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물론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달성해야 하는지 구성원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그 목표를 반드시 달성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역은 성립한다. 로또에 맞지 않는 한, 기억하지 못하면 해낼 수 없다. 설령 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말 그대로 '운'이 한 것이지, '사람, 혹은 조직'이 한 것은 아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물을 때는 노트북을 켜는 것도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절대 고개를 돌리지 말고 나를 바라보게 한 후 KPI를 떠올리게 했다. 의외로 많은 회사에서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지금 눈을 감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KPI를 떠올려 보라. 자신의 팀이나 개인 KPI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KPI를 의미한다)
회사 벽 곳곳에 붙어있고, 슬립 모드(sleep mode)만 되면 계속해서 랩탑이나 모니터에 뜨는 그 숫자들을 도대체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왜 그렇게 KPI를 설정했는지 제대로 설명을 해 준 사람도 없고, 왜 그렇게 KPI가 설정되었는지 경영진에게 손을 들고 질문한 사람도 없어서 그렇다. KPI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게 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을 달성하지 못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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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닥의 KPI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숫자'였다. 얼마나 많은 병원들이 똑닥을 사용하고 있는가.
똑닥은 모바일 앱으로 유저가 편하게 병원을 접수/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다. 주로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많이 사용한다. 이 때 그 유명한 '닭과 달걀' 논리가 적용된다.
1) 똑닥과 연동된 병원이 많아져야 유저가 늘어나는가?
2) 똑닥을 사용하는 유저가 많아져야 병원들이 똑닥을 이용하는가?
똑닥은 1번을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부모들은 똑닥이 되는 병원을 우선적으로 찾기 보다는, 자신의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를 잘 알아봐주는 병원을 먼저 선택한 뒤 어떻게 해서는 그 병원의 특정 원장님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똑닥에서는 사실상 아무도 매일같이 유저지표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똑닥을 이용하는지, 똑닥을 통해 병원 접수/예약을 하는지, 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앱을 설치했는지, 똑닥을 이용하는 유저의 잔존율이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숫자들은 KPI에서 빠져있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병원지표'였다.
똑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는 '얼마나 많은 병원이 똑닥을 이용하고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아니, 병원이 똑닥을 써야 환자가 그 병원에 가기 위해 똑닥을 쓴다면서요?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병원이 똑닥을 쓰는가?'로 KPI를 잡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자, 생각해보자. 똑닥을 쓰는 병원이란 다음 중에 무엇인가?
a. 똑닥에서 검색했을 때 나오는 병원 (똑닥에서 검색하면 똑닥으로 접수/예약이 되는 병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근처의 모든 병원들이 나온다)
b. 똑닥에 회원가입한 병원
c. 똑닥으로 유저가 접수/예약할 수 있도록 연동한 병원
d. 똑닥으로 한 달에 1건이라도 실제로 접수/예약이 발생한 병원
e. 한 달에 특정 횟수 이상 똑닥으로 접수/예약이 일어난 병원
이 중 무엇을 KPI의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회사의 전략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 비브로스에 합류했을 때 똑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C와 D였다. 거의 비슷한 중요도로 두 가지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지표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 지표가 늘어도 아무런 중요한 변화가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픈마켓 커머스를 예로 들어보자. 가장 중요하게 많이들 설정하는 지표는 1) 셀러숫자와 2) 셀러당 평균거래액'이다. 일단 셀러가 많아져야 하고, 각각의 셀러들이 많은 판매고를 올려야 커머스의 전체 거래액이 올라간다. 네이버나 페이스북, 카카오와 같은 광고매체도 마찬가지다. 1) 광고주수와 2) 광고주당 평균 광고비, 이 둘을 곱하면 광고매출이 나온다. 똑닥이 1) 병원수와 2) 병원당 평균 접수/예약건수 두 가지의 지표를 설정하는 것과 본질적으로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카카오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비브로스로 옮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했던 질문이 '업종이 다른데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비슷비슷하다'였다)
그렇다면 똑닥과 연동된 병원, 그리고 똑닥으로 1건이라도 접수/예약이 일어난 병원을 KPI로 잡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 왜 똑닥의 구성원들은 그 숫자가 늘어도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걸까?
정답은 '파레토의 법칙'에 있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지만 자신의 업무에는 그닥 적용하려 하지 않는 바로 그 유명한 법칙이다. '20%의 고객이 80%의 성과를 담당한다'는 내용 말이다. 물론 회사마다 실제로 까보면 이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Longtail의 법칙을 만들어낸 아마존같은 경우다. 공간적 제약으로 각각의 서점에서 보관/판매할 수 없었던 수많은 책들을 유저가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긴 꼬리를 모았더니 엄청난 매출이 되었다'는 기적을 만들고 증명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비즈니스보다는 실제로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혹은 회사가 속한 업종이 뭔가 갑갑한 구석이 있다면 99%의 확률로 롱테일보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
똑닥을 통한 접수/예약건수는 상위 20%의 병원에 집중되어 있었다. (30%건 25%건 18%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그냥 대충 20%라고 부른 것이다)
똑닥을 통해 접수/예약을 할 수 있도록 연동한 병원수가 증가해도, 1달에 한 번이라도 똑닥을 통해서 접수/예약이 일어난 병원수가 증가해도 똑닥의 진료완료건수 그래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생수를 여러 병 사서 호수에 붓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아주 쪼금 호수가 늘어났겠지만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회사의 KPI가 똑닥을 이용하는 '전체 병원숫자'로 정해져 있으면 직원들은 당연히 그 숫자를 늘리려고 한다. 한 곳의 병원을 설득하려면 꽤 많은 리소스가 들어간다. 병원들이 앞다퉈서 똑닥을 이용하거나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 곳의 병원을 증가시켜도 전체 병원수는 1이 증가한다. 그나마 한 곳의 병원이 늘어나면 그 병원의 환자들이 '드디어 우리 병원을 똑닥으로 예약할 수 있다니!'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똑닥을 이용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똑닥 도입 후 그 병원에서 한 달에 100건(하루에 3-4건)이라도 똑닥을 통한 접수/예약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제한된 인력으로 그 많은 병원을 설득할 수도 없고, 설득해도 진료완료건수는 아주 조금밖에 늘지 않는다. 그런데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KPI가 '똑닥을 이용하는 전체병원수'라면 어떻게 될까.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바로... 병원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똑닥을 이용하며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살피는 역할을 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게 되는 것이다.
엥? 그것이 왜 그렇게 되요?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비슷하다. 똑닥은 60명이 채 안되는 작은 조직이었다. 그 중에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와 같이 똑닥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과 CS팀과 같이 서비스를 운영하며 고객의 소리를 듣는 사람, 그리고 HR, 재무, 총무와 같은 지원역할을 맞는 사람을 제외하면 병원에 직접 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많아야 4-5명으로 제한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루에 갈 수 있는 병원수가 몇 개나 될 것인가. 그 중 똑닥을 이용하도록 설득할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병원을 설득할 인원수 x 22일 x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병원수 x 병원을 설득할 확률 = A"라고 하고, KPI로 삼은 숫자(똑닥을 사용하는 병원수)를 B라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A <<<<<<<<<<<<<<<<< B
인원을 몇 명을 더 뽑든 간에 KPI를 달성하는데는 눈꼽만큼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영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똑닥에서 직접 병원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현실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 어떻게?
똑닥 직원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병원을 설득할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광고매체로 치면 네이버, 페이스북, 카카오의 직원이 직접 광고주를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에이전시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과 같다. 똑닥은 그 방법을 찾았고, 내가 비브로스에 합류했을 때 조직도에는 병원을 직접 방문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똑닥은 KPI를 달성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아무도 실제로 병원을 방문하여 원장님을 설득하고, 간호사가 똑닥을 이용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게 되자, 똑닥 내부에는 실제 병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깜깜이가 되자 실제로 병원과 유저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부분들을 개선할 수 있는 기능들이 검토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고 회의실에서 의논한 기능들이 만들어졌다. '이 기능이 추가되면 투자를 받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의 기능들까지 추가되면서 똑닥은 병원과 유저로부터 한없이 멀어져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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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닥에 합류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한 후에 가장 먼저 한 것은 KPI를 바꾼 것이다.
똑닥을 연동한 병원이 몇 개인지, 1달에 1번이라도 똑닥으로 접수/예약이 일어난 병원이 몇 개인지는 보조지표로도 남기지 않았다. 애매하게 남겨놓으면 사람들은 또 그것을 본다. 없앨 때는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 대시보드로도 남겨놓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은 SQL을 공부해서 직접 보라고 했다.
최우선 KPI는 활성화병원 숫자로 정했다. (여기서 '활성화병원'이란 한 달에 X번 이상 똑닥을 통해 진료완료가 일어난 병원을 의미한다. X는 처음에는 100으로 했고, 그 다음해에는 똑닥의 성장에 맞추어 좀더 상향했다)
똑닥을 대신하여 전국의 병원을 설득하던 외부 조직과의 프로모션 계약은 종료하고(한 곳을 설득해올 때마다 얼마씩 보상을 하는 구조였다), 똑닥 내부에 병원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팀을 신설했다. 과거에 병원을 방문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을 팀에 넣었다. 처음엔 그렇게 2명으로 시작했다.
똑닥의 KPI가 '전체병원수'였다면 이러한 변화를 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변경된 KPI가 '활성화병원수'였기 때문에 단 2명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일같이 병원을 방문하였을 때의 결과가 KPI를 달성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또한, 똑닥을 도입해도 환자들이 잘 쓸 것 같지 않은 병원은 후순위로 밀렸다. 병원 하나가 추가되었을 때 그 병원의 환자들 가운데 5~10%가 3개월 내에 빠르게 똑닥으로 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병원을 전략적으로 찾았고, 그러한 병원들에 집중했다.
병원을 방문하고, 설득하는 것 외에 이미 똑닥을 잘 이용하고 있는 병원 가운데 몇 곳을 선택해 원장님, 간호사와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똑닥을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들은 내용을 기반으로 개선필요 사항을 정리하고 그것을 기획/개발/디자인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겼다. 드디어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똑닥에서 구성원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진실을 모두에게서 앗아가버린 것은 잘못된 KPI의 설정이었다. 똑닥을 병원에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외부 조직을 활용해서 병원수를 증가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해서 병원이 똑닥을 도입해도 그 병원의 환자들이 똑닥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어느 순간 KPI를 조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에도 똑닥 내부에 병원을 직접 방문하는 조직을 없애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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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CEO와 경영진이 의외로 많다. 개개인을 평가하거나, 팀 단위의 KPI는 그나마 신경을 좀 쓰는데 '전사 단위의 KPI 설정'에는 이상할 만큼 관심이 없다. 이것은 비단 비브로스의 문제도, 스타트업의 문제도 아니다. 카카오만 해도 처음 들어갔던 2017년에는 아무도 회사의 KPI가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잘못 설정된 KPI는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한다. 네비게이션 도착지를 잘못 설정하면 이상한 곳에 도착하게 되는 것과 같다. KPI 그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네이게이션을 탓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늘 그렇듯 잘못은 사람이 한다.
KPI는 회사의 방향타와 같다. 구성원을 집결시킨다. 그러니 제발 제대로 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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