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첫 직장이었던 LG전자를 떠나 네이버로 이직했다. 광고세일즈 포지션이었다.
나는 광고에 대해서 경험이 없었고, 세일즈를 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LG전자에서는 해외마케팅 부서에서 유럽을 담당했고 오프라인 기반의 업무였기 때문에 네이버에서 새로 맡게 될 업무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네이버가 업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에는 에이전시 출신의 사람들이 많았다. 광고주 > 대행사 > 렙사 > 네이버의 구조로 광고가 집행되었는데, 광고주가 제일기획과 같은 대행사에 전체 광고를 맡기면 제일기획은 TV CF와 같은 것은 직접 하고, 예산이 작고 복잡하기만 했던 온라인 광고는 다시 렙사에 맡겼다. 온라인에 특화된 대행사도 차츰 생겨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러 매체를 집행하며 디지털 캠페인에 대한 이해도를 키워나가고 있던 사람들이 초반에 네이버로 많이 왔던 것 같다.
광고사업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고 커져 나가자 업종 별로 주요 회사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을 채용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당시의 네이버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였지만 지금처럼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회사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광고 '세일즈'라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광고나 세일즈 경험이 전무했던 내게도 기회가 왔었던 것 같다.
당연히 내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서비스나 광고상품에 대한 이해도 적었고, 어떻게 업무가 진행되는지도 알지 못했으며, 처음 들어보는 용어도 많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은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 초반의 어려움을 견디고 나자 꽤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서 굉장히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광고주는 왜 광고를 집행할까. 광고가 잘 집행되었는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LG전자에서 광고를 집행한 적은 없었지만, 에이전시를 통해 꽤 많은 예산을 집행한 적은 많았다. 그러한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보고를 통해 'Reason Why'를 설득해야 했다. 특히 안 하던 일을 새로 한다거나, 전년도보다 예산이 증액될 필요가 있었다면 더욱 그랬다. 잘못 발의했다 결과가 안 좋으면 심하게 질타를 받고 회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TV가 광고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시기였다. 케이블TV도 생겨났기 때문에 올리브TV, Mnet, 스포츠채널과 같이 특정 장르의 유저에 특화된 채널도 늘어나고 있었다. 온라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회사에 있어 사업의 중심은 여전히 오프라인에 있었다. 광고예산을 큰 폭으로 증액하기 위해서는 광고주를 설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가 광고주 담당자가 사표를 써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네이버에 광고를 집행해야 하는가, 그것을 통해 광고주는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가.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광고주를 직접 만나야 했다. 실무 담당자도 만나야 했지만, 가능하다면 그 담당자의 매니저인 팀장, 그리고 그 팀장의 매니저인 마케팅 임원을 만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광고에도, 세일즈에도 문외한이었지만 정말로 큰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의사결정자(Key man)'를 만나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버의 기존 동료들은 매체인 네이버가 직접 광고주를 만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대행사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광고주를 만나고 싶다면 대행사와 함께 만나야 했다.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 지는 사전에 대행사와 협의해야 뒤탈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는 광고주의 목적을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광고주와 대행사는 서로 목적이 다르기도 했다.
- 광고주는 자신의 사업이 성공하기를 원한다.
- 대행사는 광고주가 더 많은 광고예산을 집행하기를 원한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매우 극단적으로 일반화한 것이다. 당연히 좋은 대행사, 실력있는 대행사가 많다. 자신의 사업처럼 광고주의 사업을 생각하고, 광고를 통해 그 사업이 성장하여 더 많은 광고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대행사가 이렇게 일하지는 않았다. 그 보다는 '더 많은 광고예산을, 더 적은 리소스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곳들이 많았다. 광고주와 대행사, 목적이 다른 두 곳을 동시에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선택해야 했다.
네이버를 다니는 동안 어떻게든 광고주를 직접 찾아갔다. 광고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있는 광고 목적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고, 더 원론적으로 들어가 광고주의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광고란 것은 사기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앞단에 있는 것이 제대로 되어야 광고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무자와 친해지고,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 같이 해결방법을 의논했다. 실무자가 OK했으나 자신의 팀장이나 임원에게 그것을 설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면 나를 이용하도록 했다.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같은 업종의 다른 광고주의 사례를 들어가며 임원진을 설득할 수 있었고, 깨지더라도 매체 소속인 내가 깨지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광고를 집행하는 담당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의사결정자를 계속해서 찾을 수 있었다.
대행사는 매체소속인 내가 직접 광고주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심하게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일단 광고주를 내가 설득하고 나면 더 많은 광고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타협을 이룰 수 있었다. 대행사와 사전에 논의를 하지는 않지만, 광고주와 나누었던 내용에 대해서는 대행사와 필요한 부분을 공유했고, 어떤 경우에도 대행사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광고 캠페인 진행과정에서 대행사가 잘못 부킹한 경우가 있어도 내부적으로 해결하거나, 대행사가 아닌 네이버의 잘못이라 광고주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광고주를 직접 찾아갈 뿐, 광고주, 대행사, 매체사는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파트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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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광고주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광고주 내에서도 누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지를 찾고 그 사람을 만나서 설득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이러한 차이는 왜 발생했을까.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1) 심리적 거리, 2) 문제해결에 대한 집착, 그리고 3)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페이스북은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과 광고플랫폼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세일즈하는 사람 간의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광고를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회사에 돈을 벌어다주고, 그 돈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거리'는 회사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밖으로도 확장된다. 서비스든 광고상품이든 간에 제품을 만들고 세일즈하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유저나 광고주가 어떤 마음인지, 만족하는지, 만약 불만족하다면 어떠한 것을 개선하는 것이 좋은지를 계속해서 찾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매체가 광고주를 찾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히 풀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행착오를 통해서 우연히 얻어걸리는 것은 것은 페이스북에 없다. 무엇인가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것을 가장 해결하고 싶은 사람부터 찾아야 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정확히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이 개선되고 있는지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정의, 해결방법, 측정의 3요소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광고주를, 그리고 광고주 안에서도 의사결정자를 만나야 했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을 중시하는 페이스북의 문화에 있다. 다양성(diversity: 참고로 본 뉴스레터인 divercity는 's'가 아니라 'c'다. 일부러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했다)은 페이스북을 다니면서 지긋지긋할 만큼 들었던 단어다. 페이스북 코리아는 굉장히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였다. 영어를 잘 하고 에이전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네이버와 같은 매체 출신의 사람, 해당 업종에서 광고주로서 일했던 사람, 광고는 아니더라도 B2B 세일즈를 해봤던 사람, 통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던 사람, 컨설팅 출신으로 C-level에 대한 이해와 컨택이 가능했던 사람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팀으로 불러들였다.
이러한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을 더했고, 투명하게 공유했고, 굉장히 direct하게 의견을 말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그것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자 서로 다른 조각을 가지고 있었고, 약점보다는 강점에 집중했으며, 필요한 것을 서로에게 요청했다. 공통된 목표를 향했다.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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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이상하게 일을 했고 페이스북은 제대로 했다와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 초기에 가까웠고, 지금의 네이버는 2006년의 네이버와는 다를 것이다. 페이스북도 지금은 예전의 그 활력을 잃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페이스북에는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오직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설득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이해가 빠르기도 했고,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정말로 그것을 하고 싶어하면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페이스북이 어떤 문화를 '지키고만' 싶어했던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다름'을 이해하고 발전시켜나갔다. 순혈을 강조하기 보다는,
찰스 다윈의 이론처럼 '진화'하고 싶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