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젊고 시끄러웠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광고주와 통화를 했고, 큰 계약이 성사되면 주위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조용하게 각자 자신의 업무를 하던,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에만 큰 소리가 나던 이전의 직장과는 많이 달랐다.
사무실에서 근무 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소리를 내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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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출근했던 첫 날은 마침 본부 워크샵이었다. 굉장히 놀라웠던 것은 그 날은 평일이었다는 것이다. 내게 워크샵은 언제나 주말에 가는 것, 기껏해야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토요일 오전에 종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이버에서의 첫 워크샵은 수요일날 오후에 출발해서 목요일 오전에 사무실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근무를 하는 그런 일정이었다. 밤새워 술을 마셨던 사람들이 다음 날 또 일을 하다니 그것도 흥미로웠지만, 해장을 파스타집에서 하는 것도 충격이었다. 다들 속이 아프다고 하더니만 태연하게 까르보나라를 먹고 있었다. 얼큰한 국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비슷한 것이라고는 토마토 해물 파스타 밖에는 없었다. 심지어 피자는 하얀색 치즈가 가득 뿌려진 고르곤졸라였다.
네이버는 정자역 SK C&C 빌딩에 있었는데 굉장히 예쁜 사내카페를 가지고 있었다. 벽면은 온통 적갈색 벽돌 무늬였는데 군데군데 네이버를 상징하는 초록색 인테리어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면접을 진행한 팀장님은 여성 분이었는데 굉장히 젊은 분이었다. 나이를 도통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 많았다.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밝고 여유가 넘쳤다. 면접을 보면서 '같이 일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네이버 광고는 크게 검색(Search AD)과 배너(Display AD)로 나뉘었고 나는 배너 광고를 판매하는 부서에 속했다. 네이버 하면 이미 검색이었기 때문에 검색광고의 매출은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너 광고의 성장율도 굉장히 높은 편이었고, 삼성전자나 SKT와 같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광고주들이 광고를 집행하고 있었다. 네이버가 마침내 철옹성 같았던 다음(Daum)을 제치던 시기였고, 서비스의 성장에 발 맞추어 광고매출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아무리 공격적인 목표를 세워도 그것을 넘어서던 시기였다.
나는 USB 드라이버를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표를 담아달라고 했다. 장표를 보면 업무 파악도 쉽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익숙해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흔쾌히 자료를 넘겨주었다. 자료 하나 요청할 때마다 '왜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그 사람의 부서장 허락을 득해야 했던' 이전 회사와는 달랐다. 처음 보는 용어나 개념들이 많았지만, 여러 사람의 장표를 살펴보면서 자주 나오는 것들부터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팔 때에는 꼭 그 제품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품에 대해서 깊숙이 알게 되면 구매하는 사람의 마음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LG전자 때에는 PDP, LCD TV를 유럽 시장에 알리는 역할을 주로 맡았었는데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브랜드와 가격, 디자인 그리고 화질이었다. 파나소닉의 기술은 압도적이었고 검정색을 표현하는 화질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좋았지만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제품도 충분히 잘 팔렸다. 사람들의 취향은 생각보다 다양했고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현장에서의 판매가 많이 달라졌다.
처음 보는 내용들이었고 직접 뭔가를 팔아본 경험도 없었지만 '내가 제품을 잘 모른다는 것'은 세일즈를 할 때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네이버 사람들은 네이버 광고나 다른 온라인 광고상품에 대해서 잘 알았지만 정작 그것을 구매하는 광고주들은 어떤 제품이 있고, 가격이 얼마고, 어떻게 구매하면 되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용어도 어렵고, 쓸데없이 복잡한 것도 많았다. 불필요한 것은 빼고, 결정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단축어와 같이 업계 사람들에게만 익숙한 용어를 뺐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무엇보다, 내가 상대하는 담당자가 자신의 팀장을 설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세일즈를 할 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업종도 다르고 업무도 달랐지만 대기업에서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이 내려지는지는 생각보다 공통된 점이 많다. 광고에 대한 지식은 적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모르는 것들은 동료들에게 물어봤고 모두들 굉장히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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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보다 일이 재밌었고, 면접을 진행했던 팀장님과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조직 분위기가 너무나도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광고주를 만나러 갈 때에도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을 수 있었고, 광고 전체를 담당하는 본부장실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서 물어볼 수 있었다.
본부장님도 꽤나 젊은 분이었고, 무엇보다 생각이 젊었다.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강약 조절을 잘했다.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확실하게, 그런 분위기를 조직 전체에 확실하게 마련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좋은 분위기가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성과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