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배너광고(Display AD)의 단가체계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처음엔 내가 새로운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해한 다음에 광고주에게 그것을 쉽게 설명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3개월의 분투를 거친 후에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일 뿐이라고.
뭔가 더 쉽게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판매하는 사람이나 구매하는 사람 모두 복잡하게 느끼는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상품들은 패키지로 판매된다.
- 따라서, 원하는 상품만 살 수가 없다(대부분의 광고주는 네이버 초기면 배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는데, 그 상품만 따로 구매할 수가 없었다).
- 서비스율이 지나치게 크다(1억원을 내면 3억원어치를 구매할 수 있었다).
- 서브지면의 상품 단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었다(어차피 공짜로 받는 지면이기 때문에 많이 주는 것처럼 생색내기 위해서였다).
- 광고주는 '금액단위(얼마 어치)'로 사고 싶어했으나, 판매는 '노출단위(ex: 500만 impression)'로 이루어져 있었다. 팔 수 있는 인벤토리를 기준으로 하는 굉장히 공급자적인 마인드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구구절절했다. 그런 것은 다 잊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어떻게 팔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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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이 해결방안을 정리했다.
1. 모든 상품의 거품을 뺀다. 상품의 가격이 실제 가치를 반영하도록 한다.
2. 1번을 적용하면 서비스율은 자연스럽게 큰 폭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광고주가 받는 가치는 같다. (광고주에게 더 많이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것을 그만하자)
3. 상품의 적정 가격은 CPC를 기준으로 한다. 어떤 상품을 구매하건 같은 금액을 지불했다면 기대되는 클릭수는 동일하도록 가격을 정한다. (당시, 대부분의 광고주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지표는 비용을 집행했을 때 자신의 사이트로 어느 정도의 트래픽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였기 때문이다)
4. 상품은 노출수 단위가 아니라 금액 단위로 판매한다. '초기배너 4천만, 뉴스지면 5천만 노출수 주세요'가 아니라, '초기배너 8천만원 어치, 뉴스지면 2천만원 어치 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5. 인위적인 패키지는 없앤다. 모든 상품은 개별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만약 초기배너만 사고 싶은 광고주가 있다면 초기배너만 사면 된다. 반대로 뉴스배너만 사고 싶은 광고주는 뉴스지면만 사면 된다. 어느 경우나 기대되는 클릭수는 같다. 다만 초기배너 가격이 뉴스배너보다 비싸기 때문에 초기배너 위주로 구매하면 배너 노출수는 적을 것이다(대신 캠페인 전체 CTR은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클릭수나 CPC는 동일한 것이다).
6. 만약 우리가 가격을 잘못 책정했다면(단순히 CPC말고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해당 배너의 판매율이 높아지거나 낮아질 것이다. 이 때에는 단가를 조정하면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정한 단가는 초기값일 뿐, 결국 시장의 판단에 따라 단가가 정해지게 된다. 모든 상품의 기대 판매율 역시 같아야 한다(완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판매율이 낮다면 단가를 내리고, 판매율이 높으면 단가를 올려 시장의 수요와 판매 단가를 맞춘다.
7. 각 상품의 실제 판매액은 '게재금액 / (1 + 서비스율)'이다. 가령 광고주가 1억원을 집행했고 30%의 서비스율을 받아 1.3억원을 받아서 초기지면 1억원, 뉴스지면 3천만원을 구매했다면 각 배너의 최종 매출은 아래와 같다.
- 초기배너: 1억원 / 1.3 = 7,692만원
- 뉴스배너: 3천만원 /1.3 = 2,308만원
이 둘의 합계는 1억원이다. 광고주가 집행한 1억원이 각 상품에 배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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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은 본부장님에게 한번 발표해보라고 했다. 본부장실은 항상 열려있었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던 시기였다. 이전 회사에서는 상무 보고 한 번 올라가려고 해도 보고서 작업을 엄청나게 하고 수정에 또 수정을 해야 했는데, 네이버에서는 그냥 PPT나 워드에 간략하게 Key Concept만 정리하면 되었다. 불필요한 절차를 최대한 생략하고, 생각을 말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때였다.
어, 거기까지.
발표시간은 30분이었는데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본부장님이 말을 딱 끊었다. 망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괜찮은데? 한 번 진행해봐. 뭐를 해주면 될까?
내 발표를 끊고 남은 장표를 혼자서 휙휙 넘기시더니 본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떤 단계로 진행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 굳이 내 보고를 다 듣지 않고도 이해하셨던 것이다. 본부장님은 광고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팅할 가치가 있는 생각이라 판단되면, Risk는 감당하려 했다.
영업기획팀이 새로 세팅되었고 팀장님이 그 팀을 맡았다. 나도 세일즈를 놓고 신규팀으로 이동하여 구체적인 실행안을 짰다. 단순히 가격, 세일즈 정책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배너광고를 부킹하고 관리하는 플랫폼 자체가 바뀌어야 했기 때문이다. 세일즈 경력이 많은 한 명과 숫자관리에 능한 한 명이 충원되어 나와 팀장님까지 총 네 명으로 팀 구성이 완료되었다.
막상 일이 진행되니 굉장히 두려워졌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괜히 제안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미친듯이 일을 했다. 나 혼자 하면 되는 일도 아니었고, 개발팀과 플랫폼기획팀, 그리고 세일즈와 외부 대행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우려되는 점을 듣고, 지킬 것은 지키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면서 준비를 했다.
당연히 혼자 한 것은 아니다. 팀장님은 온라인 광고 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하며 회사 내외부에서 좋은 관계를 쌓고 있었다. 네이버의 이러한 변화가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간의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점이라는 것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굉장히 부드럽게 커뮤니케이션 했다. 세일즈 출신의 동료는 네이버의 상품들의 속성과 히스토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와 함께 굉장히 빠르게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숫자를 담당하던 동료와는 매출 Simulation을 수도 없이 했다. 몇 백억원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변화였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는데 대충 계산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굉장히 꼼꼼하고 정확하게 숫자를 다뤘다.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신단가'란 이름으로 마침내 새로운 네이버 Display AD 단가체계 변경이 외부에 공표되었다. 런칭 초기에 극심한 반발과 우려를 일으켰지만 2-3개월이 지나자 마치 예전부터 이렇게 진행되었던 것처럼 무난히 잘 진행되었다. 아무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훨씬 적은 시간으로,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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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체계 변경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세일즈의 업무 효율이 크게 증가했고, 각 광고주 캠페인별로 서비스율만 협의하면 나머지 상품 Mix는 대행사에서 알아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절약된 시간은 더 많은 광고주를 찾고, 더 좋은 광고 소재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더 의미있는 활동에 사용되었다. 단가개편 자체는 매출을 인위적으로 증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지만, 효율성의 증대는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또한, 표준화된 프로세스로 인하여 네이버 세일즈를 거치지 않고 외부 대행사 담당자가 직접 배너를 부킹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재무팀도 굉장히 좋아했다. 그동안 배너광고는 캠페인이 끝난 달의 말일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여 매출을 인식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단가체계 변경으로 일별 매출 집계가 가능해졌다. 상품별로 판매가 되었고, 단가가 실질 가치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노출되는 수량 만큼 매출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일별 매출이 인식되면서 당월, D+1, D+2의 매출예측도 정확해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영업이익 계산을 추정하고, 이상신호를 쉽게 확인하고 광고부서와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의 각 서비스들이 어느 정도의 광고매출을 올리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리포트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면과 통합검색 페이지에 집중되던 검색광고와 달리, 배너광고는 거의 모든 서비스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동안은 상품별, 지면별로 매출인식이 어려웠지만 단가개편으로 인해 각 서비스의 광고매출이 정확히 집계되면서 광고에 대한 서비스 담당자들의 관심도가 올라갔고, 이를 통해 서비스에 광고를 붙이기도 굉장히 편해졌다.
단가체계 변경은 단순한 단가체계 변경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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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누구나 발의하고, 그것을 실제로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었다.
보고에 보고에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제품 컨셉에 대해서 굉장히 초기 단계부터 경영진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변화에 따르는 Risk를 회사가 감당한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함부로 손을 들면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이 둘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