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폭풍성장하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를 쓰고, 광고매출은 증가했고, 그렇게 번 돈을 다시 서비스를 키우는데 재투자했다. 일은 많았지만 하루하루가 꽤 즐거웠다. 모두들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본부장님이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왜 그만두는 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모든 숫자는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었고, 조직 분위기도 좋았다. 본부장님은 말을 아꼈고 모두를 격려하며 떠났다. 온갖 루머가 회사에 돌았다.
'광고부서가 잘했던 것이 아니라, 서비스가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란 말이 가장 설득력있었다. 서비스가 성장하면 당연히 광고 세일즈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서비스가 좋다고 매출이 저절로 느는 것은 아니다.
에이, 설마.
하지만 '그렇다면 왜?'는 알 길이 없었다. 광고의 수장이 교체되었음에도 회사는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너네들은 그런 것을 몰라도 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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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어 새로운 광고 수장이 왔다. 기존에 운영되던 느슨한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프로세스를 갖추어나갔다. 그러자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늘로 치솟던 광고의 성장율이 반년도 안되어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조직을 정비하며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실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검색광고는 그래도 어느 정도 선전했으나 배너광고(Display AD)의 성장율은 바로 곤두박질쳤다. 계속해서 비상회의가 열렸고 조직 분위기는 점점 더 가라앉았다. 새로 온 리더에게는 현상에 대한 분석도, 대책도 없었다. 시장의 성장이 멈춘 것이라고, 계속해서 가파른 성장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왜 갑자기 실적이 박살이 났는지.
네이버의 서비스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광고부서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딱 하나, 광고 부서를 지휘하는 선장이었다. '세일즈는 기세야'라고 말했던 이전의 본부장을 모두 그리워했다.
결국 리더가 다시 교체되었으나 한번 내려간 실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새로 온 리더는 독단적인 결정을 하지는 않았으나 결정 자체를 하지 못했다. 광고사업에 대한 이해도, 어떤 사람이 어떤 결정을 잘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끝없는 보고가 이어졌고, 사람들은 지쳐갔다.
우린 더 이상 작은 회사가 아니야. 사업이 커진 만큼 그렇게 일을 해야 돼.
대기업이 갑갑해서 이직을 했던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떠나온 회사와 닮아가는 회사의 모습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기업의 좋은 점들은 두고 겉으로 보이는 안 좋은 것들만 벤치마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암흑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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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리더가 교체되었다. 개발 출신의 리더였다. 광고부문은 광고플랫폼을 만드는 부서와 광고를 세일즈하는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광고사업은 잘 몰랐지만 개발에 강점이 있는 리더가 오니 확실히 좋은 점이 있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은 사람들에게 물었고, 누가 어떤 업무를 잘 하는지를 파악했다. 마침내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중요한 공지가 있다고 해서 나가보았더니 광고부문이 본사로부터 분리되어 별도 회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적분할'이란 용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연봉도 복지도 그대로라고,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전처럼 일을 하면 된다고 HR부서는 설명했다.
달라진 것이 없기는.
더 이상 우리들은 '네이버'에 다닌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회사는 회사명을 NHN에서 네이버로 리브랜딩을 했다. 남아있던 우리는 어느날 아침 깨어보니 NBP라는 이름의 네이버 자회사가 된 것이다. 새로 짓고 있던 사옥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린팩토리'란 이름으로 몇 년 동안이나 대대적으로 직원들에게 설명하던 곳이었다. 실망감이 컸다.
금전적으로도 달라진 부분들이 많았다. 하필이면 그 때 전세집을 계약했었는데 은행으로부터 대출한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새로운 자회사는 전년도 실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에 약속했던 금액을 대출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잔금입금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었기 때문에 계약금을 날리지 않기 위해 휴가를 내고 여기저기 돈을 마련하려 다녔다.
회사가 분할이 되고 자회사가 되었는데 직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니.
법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합법이었다. 당시 네이버는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분사 소식에도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안 좋아진 것이 맞아. 하지만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해. 같이 노력해서 본사보다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 가자.
광고부서의 리더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차라리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니 마음이 더 편했다. 당장 그만둘 것 아니면 일을 해야했다. 일단 일이라도 해야 그러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리더가 교체되었다. 제대로 된 회사의 설명은 없었다. 자회사의 자율권에 대해서 논의하다 그렇게 되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리더가 왔다. 이번에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다. 광고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분이었다. 회사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채용은 동결되었고 그 사람들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너네가 없어도 괜찮다고, 회사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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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한국의 광고시장에서 배너광고(Display AD)는 오래 전에 검색광고를 추월했다. 그 자리는 구글과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가 채웠고 카카오도 일부 파이를 가져갔다. 네이버의 광고매출은 여전히 높지만 성장율은 크지 않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네이버를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러한 것은 아무도 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