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진은 무슨 생각을 할까. 왜 자신의 생각을 직원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LG전자와 네이버는 많은 것이 달랐지만, 또 많은 것이 같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공통점은 '최고 경영진의 생각을 일반 직원은 알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LG전자에서는 CEO를 1년에 한 번 볼 수 있었다. 매해 초 열리는 신년식이었다. 시간은 짧았고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홀로그램 같은 것이 있어서 전년도 신년식 내용을 다시 틀어주었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20XX년까지 세계 3대 가전회사가 되자, 얼마의 매출을 달성하자, 그러기 위해서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가끔씩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위기가 찾아왔다' 정도였다. 그 해에는 연봉 인상율이 낮았다.
네이버에서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네이버에는 신년식이 없었다는 것 정도. 안에서 본 네이버는 밖에서 본 네이버와는 굉장히 달랐다. 납기(deadline)와 목표(target)가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해야할 지는 명확히 주어졌지만 그것을 왜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시를 하는 사람도, 그 사람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도 큰 그림을 알지 못했다. 주어진 일을 하거나, 그 의미를 각자 추정해서 일해야 했다.
네이버에서 자주 들었던 개념이 '냉장고 채우기'다. 냉장고를 채우는 것같이 사소한 일,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도 최선을 다해 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불평을 하기 보다는, 매일 냉장고를 채우며 어떤 음료들이 먼저 없어지는지를 관찰하며, 빨리 없어지는 음료를 더 좋은 자리에 놓고 더 많이 주문하고, 사람들이 잘 마시지 않는 음료는 다른 음료로 교체하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이 무엇이라 하더라도 진심을 다해 일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회사에서 알아보게 되고, 나중에 큰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좋은 말이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알겠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그냥 해라'라는 말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위'에서 결정되는 일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 같았다. 회사의 방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냉장고를 매일같이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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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통점은 한 번도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사과'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둘 중 하나였다. 잘못된 판단을 한 적이 없거나, 사과를 하고 싶지 않거나.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각 회사를 이끄는 최고 경영진은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 같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말로는 '실패를 통해 배운다'를 강조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혹은 애초에 잘못된 판단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사람들도 자신의 실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숨겼고, 많은 것들은 그렇게 묻혔지만 마침내 터져나온 것들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또 회사에서는 그러한 사건들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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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공통점은 CEO가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자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Chief Executive Officer, 굉장히 멋있는 표현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게 느껴졌다. CEO보다 더 높은 사람,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느껴졌다.
빌 게이츠가 Microsoft를 창업했다고 해서 MS가 빌 게이츠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빌게이츠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회사를 운영하지도 않는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도 마찬가지다. 뒤를 이은 팀 쿡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방향으로 애플을 지휘한다. 물론 이사회와도 긴밀하게 상의하고, 언제라도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해임될 수 있겠지만 CEO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동안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행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을까. CEO 위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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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입사했을 때 마크 저커버그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에 모든 직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Q&A를 받는 것에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특히 마크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던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사과했다.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또 실수를 할 것 같으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 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리더에게 바라는 것은 '완벽'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1936년, 찰리 채플린이 출연한 모던 타임즈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나온다. 그 안의 사람들은 생각을 멈춘 채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아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