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폐업 소식이 전해지면 늘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지극히 사후편향적인 정보를 가지고 그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던 서비스의 본질이나 BM, 조직운영방식을 낱낱이 분해하고 평가한다. 그 모습을 보면 전지전능한 신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는 본인이 직접 어느 정도 이상 규모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껏해야 몇 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아주 작은 성공을 거두었거나, 아니면 '컨설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러 스타트업에 가서 온갖 훈수를 두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딱 한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말도 저렇게 보일까.
아무리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배울 점은 있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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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며 내가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자신이 직접 해본 적이 없는 일을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왜 문제가 되냐 하면 그 사람들에게는 '남들을 속일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자신이 했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도 잘 인정하지도 않지만, 그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수정하지도 않는다.
아니면 말고.
방구석에 숨어 세상을 논하는 키보드 워리어나 다름이 없다.
물론, 나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멍청한 의견을 흘려보낼 권리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분명히 안다.
누군가 직접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자신있게 이야기할 때는 싸우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다. 그 사람이 '선'을 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말이다. 어지간하면 상대하기 싫기 때문에 그 '선'을 굉장히 유연하고 길게 두려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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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회사에 직접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그 회사의 서비스와 매우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입을 꾹 닫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나의 스타트업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졌을 때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좋았을 것 같은지, 우리는 이 사례로부터 무엇을 배우면 좋은지, 그래서 다음 스타트업이 계속해서 세상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텍스트로 자신있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을 본인이 직접 성공적으로 수행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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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과, 그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은 비슷해보이지만 그 이면은 완전히 다르다.
직접 수행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의 무게를 느낀다. 어떤 의견을 말하면서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를 너무나도 잘 안다. 그 압박감과 불안함, 후회, 절망, 그리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한 줄 빛을 찾고, 어떻게든 그것을 살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오게 되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경험은 단순히 기쁨의 영역, 자랑거리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트라우마의 집합체나 다름이 없다. 그 때의 기억이, 어려움이 PTSD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답을 위한 단서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이러한 마음도, 불안도 없다. 그들에겐 그냥 멍청한 창업가가 멍청하게 사업을 했던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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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무엇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친한 지인이나 친구에게라면 더욱 그렇다. 공개적으로 SNS에 올리는 것도, 펜대를 잡고 있다는 이유로 인터뷰 하나 없이 그 회사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도 괜찮다. 그것이 옳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를 성공적으로 진행해본 적이 없다면 그 입을 다물라'는 글이 아니다. 내가 이 말을 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은 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내용이다. 아무리 누군가의 말이 그럴듯하고,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반드시 창업을 하지 않았어도 좋다. 직장을 다니며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에게 그러한 일을 수행했던 아무런 경험이 없다면,
그러면 그 의견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굳이 싸울 것도, 속으로 마음 상할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선택적인 무관심'이다.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